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슴들이 표범에게 쫓기고 있다. 놀란 사슴들은 표범이 추격을 포기할 때까지 죽어라 달린다. 일단 위험이 지나가면 사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화롭게 풀을 뜯는다. 이것이 바로 동물의 세계다.사람을 포함해 동물은 낯선 적이 출현하거나 예기치 못한 사태가 닥치면 본능적으로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을 보인다. 이 말은 심리학적 용어로 긴박한 위협 앞에서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생리적 각성 상태를 말한다. 즉 주먹을 불끈 쥐고 싸우려 들거나, (상대방이 너무 강한 것 같으면) 3
인생을 살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보는 경험을 누렸다. 기자, 청와대 비서관, 공기업 임원, 대학교수 등 여러 직업을 거치면서, 또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위로는 대통령, 총리, 권세가, 부자, 명망가에서부터 아래로는 사기꾼, 살인자, 조폭, 홈리스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형을 접했다. 그래서인지 사람 보는 안목에서 비교적 크게 실패하거나 잘못 보지는 않았다고 자부한다. 대부분 내가 보고 느낀 대로 (그 사람은) 행동하고 처신하고 살아갔다.물론 사람에 대한 판단을 그르칠 때도 있다. 대개 내가 감정이나 욕망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예상대로’ 패배했다. 막상 투표함을 열면 트럼프의 ‘숨은 지지층(Shy Trumpers)’이 나와 승리할 것이라는 트럼프 지지층의 희망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그러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이번 선거에서 미국인 거의 절반이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11월 8일 CNN 집계에 따르면 이날까지 바이든 당선인이 최소 7535만표(50.5%)를 획득했지만, 트럼프도 7110만8303표(47.7%)를 얻었다. 트럼프는 비록 패자(敗者)이지만 역대 가장 많은 표를 받고 떨어진 인물이 됐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 별세에 대한 집권 여당의 반응을 보면서 ‘참 속 좁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 기업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한국을 1등 국가로 도약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결과적으로 한국인들의 소득과 생활수준 향상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재계의 거인을 떠나보내면서 한다는 말들이 ‘재벌 폐해’ ‘정경유착’ ‘조세포탈’ 등등이라니….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고인은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불인정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치셨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고 했고, 허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내가 만 4살 되던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났다. 당시 수송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린 학생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이야기를 아침 밥상머리에서 들었다. 네 살배기라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구나 하면서 걱정하던 기억이 난다. 다섯 살 되던 1961년 5·16군사정변은 아주 선명히 기억이 난다. 아침 일찍 일어나시는 할아버지가 켜신 KBS 라디오를 통해 박종세 아나운서의 음성으로 들었다. 또 주동자인 박정희 소장의 혁명공약 선포도 기억이 난다. 내가 살던 곳은 서울 후암동이었는데 아침에 남산에서 군인들이 혁명 성공 의미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식에서 ‘공정(公正)’이란 단어를 37회 언급했다. 요즘 전성기를 구가하는 방탄소년단(BTS)을 ‘청년대표’로 참석시키고 문 대통령이 한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기성세대는 오랫동안 특권과 반칙이 만연한 사회에 살았다. 기득권은 부와 명예를 대물림하고, 정경유착은 반칙과 특권을 당연하게 여겼다. 기성세대가 불공정에 익숙해져 있을 때, 문제를 제기하고 우리 사회의 공정을 찾아나선 것은 언제나 청년들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공정하다는 청년들의 분노를 듣는다. 끝없이
영국 왕립지리학회 소속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 여사는 구한말 조선 땅을 주유천하하면서 줄곧 이런 의문을 가졌다.‘조선인들은 잘생기고 힘이 세며 대단히 명민하고 똑똑한 민족인데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게으르고 더럽고 가난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걸까?’그러나 그녀의 의문은 두만강 너머 러시아 연해주 땅에 정착한 풍요롭고 근면한 조선인 마을을 보고 풀렸다.‘주체성과 독립성, 영국인에 가까운 터프한 남자들로 변해 있었다. 그들의 변화는 정직한 정부 밑에서 자신들의 생계를 보호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비록 제정러시아 말기
나이가 들수록 자기 의견을 절대시하거나 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조심하려고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문재인 정권은 더 이상 아니다!”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싫어하는 대통령·정권·정당이 있어도 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민주적 시민의 태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문재인 정권에 대해 비토(veto) 의견을 제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째, 현 정권은 유사 파시즘(fascism) 정권이다. 노재봉 전 총리의 말처럼 지금 우리나라 상황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내 ‘보수 대 진보’의 대립이 아니라 ‘
인간관계에서도 지켜야 할 질서와 법도가 있다. 아무리 사랑스러운 자식이라도 부모가 자식의 비행을 마냥 감싼다면 올바르지 못하다. 친구의 명백한 잘못을 옹호하거나 모른 척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매사 그럴 순 없지만 되도록 사리분별을 따지고 사는 게 인간관계의 도리요, 그럼으로써 공동체가 유지된다.하물며 세상의 시시비비(是是非非) 따지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언론·수사·사법기관 종사자는 말할 것도 없다. 나아가 국정을 책임진 행정부의 장(長), 정당과 국회의원, 청와대와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정권의 생리상 자기 편끼리 감싸고도는 것을 일
1988년 2월, 5공 전두환 정권이 물러나고 6공 노태우 정권이 들어섰다. 국내 여론은 곧바로 5공 비리 수사를 요구했고, 첫 번째로 전 전 대통령의 친동생 전경환씨를 지목했다. 전씨는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을 지내면서 위세를 부린 인물이었다. 당시 뉴욕지사에서 근무하던 나는 뉴욕에 있다는 전씨 재산 추적에 나섰다. 전씨와 가까웠던 교포들부터 만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뉴욕 한인회장과 미주지역 한인회 총연합회장을 지낸 박지원씨를 지목했다. 그를 ‘전경환의 오른팔’로 부르는 이도 있었고, “전씨가 뉴욕에 오면 그 사람이
한국인들은 대체로 자기가 좋아하는 공인(公人)에 대해선 후한 평가를 내리고, 좋아하지 않는 이에 대해선 박한 평가를 내리는 편이다. 나와 사사로운 인연이 있거나 생각이 비슷하면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종종 ‘인간적’이고 관용적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일 경우 지나치게 ‘엄격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어쩌면 이런 한국인의 성정(性情)이 조선시대 들어 계속된 극심한 당파싸움의 원인 제공자였을 수도 있다. 노론, 소론, 남인, 북인…. 편을 갈라 싸울 때 ‘우리 편’은 온갖 논리와 명분을 끄집어내 철저히 감싸고
문재인 대통령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경제·사회·외교·남북문제 등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는 판국에도 특유의 너털웃음과 선한 미소를 지으며 ‘다 잘되고 있으니 그저 우리 하는 일 도와 달라’는 식의 레토릭으로 일관하고 있다.과연 그의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본래 천성이 그런지, 아니면 우리가 걱정하는 것보다 상황을 낙관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도 아니면 미증유의 난국을 헤쳐나갈 복안이라도 갖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역대 대통령을 보면 이승만·박정희·김대중은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가
요즘 돌아가는 세상일을 보며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 주변 여러 사람이 실망하고 좌절하고 분노하고 자책하고 절망하며 산다. 물론 그 반대로 기뻐하고 환호하고 으쓱거리고 자신감에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통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만사가 내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이 원하는 쪽으로 진행될 때 행복해한다. 반면에 일이 내 뜻에 거슬리게 진행될 때는 좌절하고 분노하고 상처 입고 불행해하고 고통받는다. 그러나 설령 일이 평화롭고 만족스럽게 진행돼 처음 원하던 바를 얻
언제부턴가 뉴스를 보기가 겁나기 시작했다. 보고 나면 분노, 우울, 미움, 한탄, 절망, 자책 등의 부정적 감정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성정이 그리 원만하지도 않으며, 참을성도 많지 않다. 직설적으로 반응하는 내 마음의 파도가 때로 나를 꽤 지치게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나름 마음의 평정을 찾는 기술을 약간 터득했다고나 할까.한동안 정말 마음이 힘들 때가 있었다. 모든 게 잿빛으로 보였고 긍정적 감정을 갖기 어려웠었다. 그때 나를 돌아보게 해준 것이 20세기 두 걸출한 인물의 인생 역정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현 정의기억연대의 전신) 간 기부금 유용 논란을 보고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것은 여야의 정파적 갈등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고, 보수 대 진보 진영의 이념 문제도 아니며, 친일 대 반일 프레임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인간의 탐욕이 견제받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막장드라마다.지금 여러 가지 객관적 정황과 증거자료들로 볼 때 할머니들의 주장이 사실로 입증될 가능성이 크다. 할머니들에게 지급된 지원금, 할머니들의 쉼터란 명목으로 구입했던 부동산, 미심쩍은 공금 사용을 비롯한 부실
내가 신문기자를 시작하던 1980년대 초, 전국지는 조·석간 합쳐 6개뿐이었다. 이 밖에 통신사 1개, 지상파 TV 2개, 경제지 두어 개가 있을 뿐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 매체와 유튜브를 포함해 수천 개 언론사가 난립하는 시절과는 달랐다. 나름 자부심도 높았고 회사 분위기도 좋았다. 200명 가까운 기자가 매일 12면을 제작하니 정성도 대단했다.문제는 언론 자유가 없다는 점이었다.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는 보도되지 못했고 담당 기자나 간부는 기관에 끌려가 ‘봉변’을 당했다. 서슬 시퍼런 상황이라서 정치·사회 등 정권과 관련
세상 경험을 하면서 나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을 조심한다.첫째, 언행에서 지나치게 ‘오버(over)’하는 이다. 자신을 심하게 과시하거나 과도한 감정을 노출하는 사람들 말이다. 둘째, 자신을 정의롭다고 여기는 이다. 이런 사람들은 선악을 분명히 가르고 자기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불의(不義)로 규정한다. 기자와 관직 생활을 거치면서 나는 이런 ‘조심해야 할 사람’들을 수없이 만났다. 그중에서 기억나는 두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1986년 부천서 성고문사건의 장본인 문귀동 경장이다. 당시 노동운동을 벌이던 서울대생 권인숙 양을 성추
굳이 코로나19 대재앙 사태를 언급하지 않아도 인류 역사는 자주 후퇴하곤 했다. 불과 100여년 전인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혁명으로 세워진 소련, 1939년 독일 히틀러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 1941년 일본의 태평양전쟁만 봐도 그렇다.당시 이 세 나라의 공통점은 가공할 만한 전체주의(全體主義) 국가라는 점이었다. 비록 이념적으로는 좌파(communism)와 우파(fascism)로 나뉘지만, 본질적으로 개인보다 집단의 이익을 강조하며 집권자의 정치권력이 국민의 전 영역에 걸쳐 절대적인 통제를 가하는 체제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나는 문재인 정권 출범 전후 갖고 있던 주식을 처분하고 현금 등을 합해 달러로 바꿔놓았다. 물론 얼마 되지 않는 액수지만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경제적 자구책이었다. 이유는 향후 큰 태풍이 우리나라로 불어닥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제 전문가도 아닌데 그런 결론에 도달했던 것은 20년 전 홍콩 특파원 시절 겪은 IMF 악몽의 결과였다. 당시 ‘나쁜 정치와 리더십’이 멀쩡한 나라를 위기로 몰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었다.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인호씨는 지난해 펴낸 외환위기 회고록에서 이렇게 설명했다.“기업은
지난 70여년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국가적 대(大)위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연일 ‘마스크’를 강조하고 있다.지난 2월 26일 “마스크 공급물량은 충분하니 걱정 마시라”고 했다가 막상 현장에 마스크가 없자 이튿날 홍남기 부총리(27일), 정세균 총리(28일), 문 대통령(3월 3일) 사과로 이어졌다. 이후 문 대통령은 마스크 생산업체를 찾아가 “남은 물량은 전량 정부가 구매하겠으니 생산량을 늘려 달라”고 호소하고 △마스크 구매 5부제 시행 △대리수령 범위 확대 등을 일일이 지시하고 나서고 있다.(이에 앞서 우리 외교부는 지난